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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이야기

넘버나인 Number Nine: 일본 소년이 패션세계에 던진 도전장

by 인스타커버 2020. 6. 20.

넘버나인의 스타일을 잘보여주는 티셔츠의 예 l 출처: 인스타그램 @takumiggg

넘버나인 Number Nine: 비행소년이 패션 세계에 던진 도전장이라는 주제로 브랜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세계적인 스케일로 봤을 때는 메인스트림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일본에서는 옛날부터 아주 큰 마니아 층을 이루고 있던 브랜드죠. 넘버나인 역시 옷 좋아하는 분들은 다 아실 테고 관심이 그다지 없으신 분들도 가끔 노래 가사로 어디선가 들어봤던 이름일 거라 믿습니다. 

Beginnings

넘버나인의 타카히로 미야시타는 1973년 도쿄에서 작곡가인 아버지와 주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형 덕분에 패션에 일찍부터 눈을 뜨게 된 미야시타는 16살에 처음으로 미국에 가서 순식간에 아메리카나 스타일에 빠집니다. 일본으로 돌아와서는 여러 스타일리스트 밑에서 조수로 일하며 일본 잡지 포토슛을 도왔습니다. 고등학교를 입학하고 나서는 학교에 흥미가 생기지 않아 방황하면서 안 좋은 무리와 매일 술 마시고 수업 땡땡이를 치며 도쿄 길거리에서 자주 싸움을 했다네요. 2007년의 한 인터뷰에 따르면 학교를 자퇴했다는데 이 시기가 미야시타가 대마초를 피기 시작한 때와 비슷해서 퇴학을 당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학창 시절부터 또래의 아이들은 학업에 열중하는 동안 본인은 하라주쿠에서 일하며 번 모든 돈을 옷에 탕진했다고 하네요. (옷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는 충분히 이해가 가는 부분이네요) 그 당시 하라주쿠는 가장 스타일리시하고 세련된 사람들이 다니던 거리였고 그들 만의 혁명적이 리테일 시스템이 발달하고 있던 중이었죠. 미야시타는 전문적인 디자인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옷장에 있는 의류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면서 독학으로 디자인하는 방법을 익힙니다. 

 

이후에는 일본식 아메리카나 스타일의 오랜 베테랑인 시미즈 케이조가 1998년에 설립한 네펜데스에서 일할 기회가 찾아오죠. 네펜데스라고 하면 니들스, 엔지니어드 가먼트 그리고 사우스 2 웨스트 8의 형제 브랜드입니다. 이때 패션을 전문적으로 하고 싶다는 확신을 받았고 디자이너로서의 길을 택하죠. 여담에 따르면 미야시타는 네펜데스 가게를 주 2-3회 정도는 찾아갔다 할 만큼 케이조의 디자인에 깊게 감명받고 좋아했다 합니다. 다만 옷을 살 여건이 안돼서 아이쇼핑만 주야장천 했다는 게 슬프네요. 그러던 어느 날 점장이 매일 같이 보는 미야시타의 패션 감각을 알아보고 케이조한테도 이 사실을 알려 미야시타를 고용하게 됩니다. 케이조의 말에 의하면 미야시타는 자신의 능력에 대해 완전한 이해도를 지니고 있었고 이 점을 토대로 모든 디자인을 능숙하게 구성하였다고 합니다. 옷에 대한 이해도의 깊이와 폭이 매우 넓은 점이 남들과 차별화되는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하더군요.

 

1997년에 드디어 넘버나인이라는 이름을 걸고 창립하게 되는데요, 위치는 일본의 패션 콤플렉스 에비수로 정했다고 합니다.  Nowhere 같은 스트리트웨어 샵들이 점령하던 우라하라와 하라주쿠에서는 비교적 유니크하고 새로운 콘셉트의 브랜드가 들어선 것입니다. 전설적인 패션 비평가 팀 블랭크스에 의하면 서부 영화에 나올법한 분위기를 지녔다고 하더군요. 넘버나인이라는 이름은 1968년 발매된 비틀스의 The White Album의 수록곡 중 하나인  Revolution 9이라는 컴포지션에서 반복되는 문구 넘버나인에서 따온 거라고 합니다. 존 레넌의 말에 의하면 잔인한 혁명이 일어날 때 자기의 무의식에서 일어날 법한 상황을 소리로 담아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 사이에 일어나는 대화, 아기의 울음소리, 라이엇을 외치는 사람 등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소리를 한 곳에 모아놓은 듯한 트랙이 탄생합니다. 실제로 들어보시면 뭔가 무섭기도 하고 눈이 휘둥그레지는 사운드입니다. 미야시타는 이 트랙에 일어나는 모든 것들을 형체화 시키는 것에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넘버나인의 디자인은 앞서 말해드렸듯이 미국의 아메리카나 문화에 미야시타의 감성을 녹여 만들어집니다. 음악 (주로 비틀스, 커트 코베인, 오지 오즈본 등 그런지나 펑크 락), 밀리터리, 미국 서부개척 시대의 카우보이 스타일, 반항과 고독을 상징하는 테마를 많이 보여주죠. 이에 더해 옷 안쪽에 음표 무늬가 그려진 천으로 마감처리를 하고 블레이저 소매에 9개 모두 활용 가능한 버튼을 단다든지 디테일에 굉장히 많은 관심을 기울입니다. 

 

이 모든 일이 일어날 때쯤 미야시타는 언더커버의 준 타카하시와 만나게 됩니다. 지금까지도 좋은 친구로 지낸다고 하죠. 2004년 파리에서 최초로 주최한 패션쇼인 FW04 “Give Peace A Chance”도 타카하시가 미야시타를 닦달해서 한 거라고 합니다. 타카하시가 말하기로는 요지 야마모토나 레이 가와쿠보와 같은 선배들과 자신들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음악, 반항심, 유스 컬처에서 영감을 얻는 것이라고 하네요. 이 때문에 젊은 층에서 더 많은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두 사람은 적합함과 일관성을 굉장히 싫어하기 때문에 남성복에 고정돼있는 편견을 깨트리는 것이 목표라고 했습니다. 

Number (N)ine 넘버나인 08AW My Own Private Portland 

네펜데스에서 일하면서 미국 출장을 더욱 자주 가게 되었는데요, 이때 오레곤주의 도시 포틀랜드와 사랑에 빠집니다. 그 이유가 바로 지역이 갖고 있던 아메리카나에 대한 애착, 기묘한 역사 그리고 대마초(???) 때문이었다는데요, 이 사랑이 그의 08AW 컬렉션인 ‘My Own Private Portland’의 기반으로 까지 자리 잡게 됩니다. 이 컬렉션은 “My Own Private Idaho”라는 1991년 영화를 오마쥬 했다고 하는데요, 태평양의 북서쪽으로부터 미야시타가 받은 느낌을 많이 반영했다고 합니다. 이 패션쇼는 파리에서 포틀랜드 에이스 호텔과 협업으로 개최되었는데 쇼가 진행되는 동안을 위해 손님들에게는 펜들턴 담요가 주어졌다고 합니다. 온화한 시작과는 달리 런웨이는 미야시타가 바스틸에서 찾은 허름한 차고지 같은 곳에서 진행했다고 합니다. 비디오를 보시면 실제로 뒤에 차가 몇 대 주차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로맨틱하게 보였다고 합니다. 이런 배경을 선택한 것에 있어선 커트 코베인과 “My Own Private Idaho”의 배우, 리버 피닉스의 영향이 컸다고 합니다. 관중들은 패션쇼의 순간적인 분위기와 미적 변화에 많이 놀랐다고 해요. 이 시즌은 다른 시즌들에 비해 인기가 덜 했던 시즌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시선이 바뀌고 있죠. 코듀로이 재킷과 헤링본 팬츠, 물 빠진 베이스볼 셔츠 위에 걸친 바시티 재킷, 프린지 모카신 부츠, 셔링 재킷 등 그다지 새롭지는 않은 디자인 같지만 디테일의 깊이가 익숙함을 깨트렸다고 하네요. 

Present

일부 비평가들에게 과거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평을 듣기도하는 현재의 넘버나인 l 출처: 인스타그램 @8division_journal

넘버나인이 성장할수록 그만큼 비평가들의 눈에도 많이 뜨였는데요, 미야시타가 가장 거부감이 드는 비평 중에 하나가 남들이 자신의 컬렉션을 보고 ‘넘버 나인스럽다'라는 말을 듣는 것이라고 합니다. 타인의 예상과 자신의 행실이 맞아떨어지는 게 싫어서라고 하네요 더 나아가 브랜드가 커지고 유명해질수록 통제가 힘들어진다고 본질에서 멀어져 가고 있다고 생각돼서 2009년 1월 22일 AW09 “A Closed Feeling”이라는 마지막 패션쇼를 열고 2월 20일을 기점으로 넘버나인을 해체시킵니다. 해체시켰다기보다는 Kooks라는 기업에 팔았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네요.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넘버나인이 팔린 이후의 디자인이나 재질은 아쉽게도 방향성을 잃은 채 전성기 때의 것들을 그저 모방하는 것 같다고 하네요. 넘버나인이라는 브랜드의 이미지가 한 가지로 좁혀지면서 박제될 때쯤부터 미야시타는 브랜드에서 나와 자기의 근본적인 목표를 다시 이루고 싶다고 했습니다. 마치 비틀스가 해체한 뒤 존 레넌이 자기의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던 것처럼 말이죠. 그렇게 넘버나인이 미야시타는 정신건강을 회복시키기 위해 1년의 공백기를 두고 이후 TAKAHIROMIYASHITA The Soloist라는 이름으로 2010년부터 다시 활동을 시작합니다. 2018년에는 이 이름을 걸고 PITTI UOMO에서 언더커버와의 협업 컬렉션을 선보입니다. 이외에도 콜라보를 굉장히 많이 했는데요, 몇 개를 언급하자면 아트모스, C2 H4, 오니츠카 타이거, 매지컬 디자인, 그리고 최근에도 협업한 컨버스가 있습니다.

컨버스와의 콜라보에서 독창적인 모습을 보여준 타카히로 미야시타 l 출처: 인스타그램 @footsell

오늘은 일본 브랜드 중 독창성과 창의성을 인정받은 넘버나인의 브랜드 이야기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기업 경영과 관련하여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디자이너의 창의성은 타 브랜드와의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준 것 같습니다. 다음에도 흥미롭고 유익한 브랜드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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